본문 바로가기
독서

소설 옥상에서 만나요, 글 정세랑, 출판 창비, 발행 2018

by 문생세넓 2025. 3. 18.

웨딩드레스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결핍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특권'이다.

 타인이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에 대한 결핍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 잦은 이사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스스로의 능력이든, 가족 구성원의 능력이든) 집을 소유한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동이 자유로운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눈에는 안 보이고 내 눈에만 보이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당신은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의 결핍을 내가 누리고 있는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서로의 불편함에 대해, 서로의 눈에만 보이는 것에 대해, 내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는 왜 그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생각해 본다면 사회의 갈등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보늬

"하다가 죽지 않는 거, 하고 싶다."
"있어? 그런 거?"
"...... 그럼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하고 싶다."
"그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두 일에 대해,
혹은 둘의 교집합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p.142, 정세랑, <보늬> 옥상에서 만나요 中, 출판 창비, 2018

 

퇴사를 하고 읽은 책이라 글귀들이 와닿았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가 '일'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해피 쿠키 이어

 

겉돌고 겉돌다가 얼떨결에 붙들려간 회식 자리에서 질문이 훅 들어왔다.
"명예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교수가 나를 빤히 보며 물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보통 중요한 질문을 하기 전에는 스몰토크가 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누이들은 히잡을 쓰지 않았으며 교육을 받았고 연애결혼을 했으며 나는 누이들을 손끝 하나 건드릴릴 마음이 없다고 말해야 할까. 그래도 우리나라는 인접국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리 최고형을 선고해도 여전히 이어지는 명예살인이 부끄럽고 이성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아 절망적이라고 해야 할까. 한 개인이 한 문화권의 죄악에 대해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면 한국 남자는 한중일 삼국 남자들의 죄악에 책임을 느끼는지 반문해야 할까...... 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는 덩어리래도.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p173., 정세랑, <해피 쿠키 이어> 옥상에서 만나요 中, 출판 창비, 2018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였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성형 브로커와 그와 관련된 사기 행각들에 대해 따지듯이 물었다. 성형 브로커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커녕, '20대'의 '여자' '한국인'이었음에도, 성형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질문과 태도였다.

 이 외에도 관심도 없던 K-pop(이 때는 BTS가 몇 명인지도 몰랐다)이나 K 드라마(태양의 후예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때였다)에 대한 질문을 엄청 받았다. 그들은 나를 처음 만났음에도 하얀 도화지가 아닌 이미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로 나를 대했다. 한국에서 나고 교육받으며 자라 국가 정체성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들이 미디어 등으로 접한 한국인의 모습과 다른 '나'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개인은 개인일 뿐, '덩어리'로 묶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적, 직업, 성별, 나이, 학교/회사, 그 밖에도 '개인'을 '덩어리'로 분류하는 기준이 너무나 많다. '덩어리'의 특징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특징으로 개인을 부정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느낌

 가장 공감이 되었던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제도적인 부분이었다. 현재의 나에게 결혼이란, 37번 에피소드처럼 나에게 '이득'이 되는 제도가 될 때 취할 무언가에 가깝다. 남성의 시각에서 <턱시도>라는 작품이 나온다면 어떨까. '신혼집', '연봉' 등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옥상에서 만나요
신선한 상상력과 다정한 문장으로 정확한 위로를 건네는 작가 정세랑의 첫 번째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장편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고 있는 저자가 2010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8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사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신선하고도 경쾌한 상상력을 펼쳐놓는다. 직장에서 부조리한 노동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늘
저자
정세랑
출판
창비
출판일
2018.11.30